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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설교, 겸손의 왕

무명의그리스도인 2025.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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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향한 겸손한 왕의 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고난주간을 맞이하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을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21장 8절과 9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무리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큰 무리가 자기 겉옷을 길에 펴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소리 높여 외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마태복음 21:8-9) 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하였습니다.

 

이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기쁨과 환호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내면에는 곧 다가올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종려주일로 불리는 이 날의 환호성이 며칠 후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으로 바뀔 것을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예언과 고난,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깊이 묵상하며, 고난주간 동안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자세를 배우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주님의 마음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주님을 따라 고난의 길을 걸어갈 때 어떠한 마음과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제 함께 본문을 중심으로 몇 가지로 나누어 묵상해 보겠습니다.

 

예언된 왕의 겸손한 입성 (마태복음 21:8-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모습은 구약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는 사건입니다. 수백 년 전에 스가랴 선지자는 메시아가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시온에 임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스가랴 9:9)라는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세상의 권세자들이 이용하는 화려한 군마가 아니라 작고 초라한 나귀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어떤 왕으로 오셨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왕, 평화의 왕으로서 사람들 가운데 임하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나뭇가지를 꺾어 길에 깔며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마태복음 21:8). 겉옷을 깔아 길을 만드는 것은 고대에 왕이나 존귀한 이를 맞이할 때 최고의 존경을 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마치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드려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들이는 모습입니다. 무리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외쳤습니다 (마태복음 21:9).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예수님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아, 곧 다윗 왕의 혈통에서 오실 약속된 왕이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그리고 “호산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지금 구원하소서” 혹은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간구에서 유래한 말인데, 이때에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외침으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복되시다”라는 외침은 시편 118편 26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메시아를 맞이하는 찬송의 고백이었습니다. 무리는 예수님을 보며 이제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가 오셨다고 환호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은혜의 순간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예수님은 초라한 나귀를 타셨지만, 그분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이루시는 영광의 왕이십니다. 제자들과 많은 무리가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찬양하였듯이, 우리도 삶 속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인정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고 예수님께서 어떤 왕이시며 어떠한 길을 가고 계시는지 더 깊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단순히 영광과 찬양만 받으시려 이 길을 가신 것이 아니라, 곧 다가올 고난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향한 예수님의 순종과 예언 (마태복음 20:18-19)

예수님께서 큰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지만, 그분의 마음은 이미 십자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부터 자신에게 닥칠 고난을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자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마태복음 16:21)고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직전 길을 걸으시면서도,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조롱 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리라고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0:18-19).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이미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영광의 왕좌가 아닌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 길을 피하지 않으시고 담대히 나아가셨습니다.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을 내어주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무리가 흔드는 종려나무 가지들과 울려 퍼지는 호산나 소리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눈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고난의 잔을 향해 있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앙했지만, 주님은 사람들의 일시적인 환호에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신 것은 사람들의 인정이나 정치적 왕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은 예수님이 당장 로마의 압제를 끝내 줄 정치적 메시아가 되기를 바랐겠지만, 정작 주님은 세상의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예루살렘에 드리운 십자가의 그림자를 분명히 보시며 한 걸음 한 걸음 순종의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거룩한 의지였습니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 특히 이사야서에 예고된 고난받는 종의 모습과 (이사야 53장) 시편에 예시된 메시아의 고통 (시편 22편 등)을 예수님은 친히 성취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 어린 양으로 내어주시며, 기꺼이 고난을 받으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깊은 뜻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그저 환호하는 무리에 섞여 있었겠지만, 예수님의 시선은 십자가를 향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처럼 예언된 고난의 길을 끝까지 받아들이심으로써,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러 나아가셨습니다.

 

메시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이사야 53:5)

환호로 시작된 예루살렘 입성은 불과 며칠 만에 고난과 죽음의 길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동안, 종교 지도자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략을 꾸몄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제자 중 하나의 배신으로 체포되시고, 불의한 재판 끝에 사형 선고를 받으십니다. 얼마 전까지 “호산나”를 외치던 무리 중 많은 이들은 이제 침묵하거나 등을 돌렸고, 일부는 선동된 군중에 휩쓸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처럼 정죄받아 끌려가시는 장면은 인간 죄악의 비극과 연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골고다 언덕에서 두 죄인 사이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셨고, 온몸은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손과 발에는 굵은 못이 박혀 피가 흐르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몇 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처참한 형벌이었지만, 주님께서는 끝까지 인내하시며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중보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누가복음 23:34). 그리고 마침내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 외치신 후 머리를 숙이시며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9:30).

 

예수님의 이 십자가 죽음은 겉으로 보면 실패요 처참한 끝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의 계획이었습니다. 이미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하며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이사야 53:5)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찔리고 상하신 것은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주님이 대신 받으심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요한복음 1:29), 자신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호산나의 외침에 참으로 응답하는 구원은 다름 아닌 이 십자가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할 때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 치르신 그 대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 흘림 없이는 우리 죄 사함도 새 생명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겸손한 감사와 회개의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고난에 동참하며 주님과 동행하기 (마태복음 16:24)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도전은, 주님을 따라 그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지 기적과 영광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고난의 길에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담당하신 그 고난을 그대로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께서 걸으신 희생과 섬김의 길을 따라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 체험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였고 (빌립보서 3:10),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21)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순례자로서 때로는 희생과 헌신의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것이 바로 주님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설령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베드로전서 3:14). 또한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며, 세상 속에서 진리를 지키며 살아갈 때 겪는 크고 작은 희생과 손해들이 바로 그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리입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우리가 따를 때 오히려 그 속에서 주님의 위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주간은 특별히 주님의 마지막 고난 여정을 마음에 새기며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한 주간 금식하며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일들은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우리의 헌신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고난의 쓰디쓴 잔을 조금이라도 맛볼 때, 부활의 기쁨을 더욱 풍성히 누릴 준비가 갖추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동행합시다. 그렇게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걸어갈 때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과 소망이 우리의 마음에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부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예언된 대로 겸손한 왕으로 오셔서 사람들의 호산나 찬양을 받으셨지만, 그 길을 곧바로 십자가의 고난으로 이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과 순종의 발자취를 우리가 기억하며 따라가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길입니다. 당시 예수님께 열광하던 무리들처럼 우리도 종종 주님을 오해하거나 자기 기대대로만 따르려 할 때가 있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모른 채 주님께 환호하다가, 정작 주님이 원하시는 순종과 희생의 자리에서는 물러서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 고난주간을 지나는 동안에는 단순히 예수님의 고난을 바라보기만 하지 말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며 그 고난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왕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온전히 모시고, 그분의 겸손과 희생을 본받아 살아갑시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때로는 힘들고 좁은 길처럼 느껴질지라도, 그 길 끝에는 부활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가오는 일주일 동안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더욱 주님을 닮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시적인 영광이나 만족을 구하기보다, 영원한 가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 역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결단해야겠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교회와 성도가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부활의 새 생명으로 충만케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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